1. 회사 다닐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야근이 아니었다. 내가 뭘 할지를 내가 못 정한다는 느낌이었다.
2. 1967년,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이 실험을 하나 했다. 개에게 전기충격을 줬다. 한쪽 그룹은 버튼을 누르면 충격을 멈출 수 있었고, 다른 쪽은 뭘 해도 멈출 수 없었다.
3. 다음 단계. 이번엔 낮은 칸막이만 넘으면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자에 넣었다. 버튼으로 충격을 멈춘 경험이 있는 개는 바로 뛰어넘었다.
4. 근데 뭘 해도 안 됐던 개는, 문이 열려 있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충격을 맞고 있었다. 도망칠 수 있는데 도망치지 않았다.
5.. 셀리그먼은 이걸 '학습된 무기력(Learned Helplessness)'이라고 불렀다. "뭘 해도 안 돼"가 반복되면,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시도를 포기하게 된다는 거다.
6. 이 얘기로 끝나면 좋겠는데, 사람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. 후속 연구에서 사람에게 풀 수 없는 문제를 반복해서 줬더니, 나중에 쉬운 문제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났다.
7. (이게 무서운 게, 나도 회사 다닐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. 처음에는 "이건 아닌데"라고 생각했던 것들이, 반복되니까 어느 순간 "다 이런 거지"로 바뀌더라)
무기력은 한 번에 오지 않는다. 아주 천천히 온다. 그래서 위험하다. 본인이 무기력해졌다는 걸 모른다.
8. "원래 다 그런 거 아냐?" "어차피 해봤자 뭐가 달라져?" "나는 그런 거 안 맞아."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면,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다.
9. 그 말이 진짜 내 판단인지, 아니면 반복된 좌절이 만든 습관인지.
10. 2번 꼭지에서 삼일운동 얘기를 했다. 그 사람들도 "뭘 해도 안 될 거야"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. 식민 지배 아래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질 수 있었다. 근데 나갔다. 칸막이를 넘었다.
11. (삼일절에 이 글을 쓰면서 나한테도 물어봤다. 지금 내 앞에 넘을 수 있는 칸막이가 있는데, 내가 안 넘고 있는 건 아닌가?)
12. 문은 이미 열려 있을 수 있다. 다만 내가 안 된다고 학습했을 뿐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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